
기본 정보
- 원작: '폐하, 또 죽이진 말아주세요' - 에클레어
- 작화: 하연
- 각색: 혜용
- 출판사: 다온웹툰
- 회차: 본편 136화 + 외전 4화
- 연재처: 카카오웹툰, 카카오페이지
- 유형: 회귀
줄거리
| 햇볕 강한 여름날의 죽음이었다. 열 여덟, 폭군의 손에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뒤이어 내 목까지 단두대 위에서 잘려나갔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열 두살의 생일이었다. 열 세살의 어린 황녀(?)가 잔인한 폭군 황제가 되기 전에 나는 어떻게든 저 인간 옆에 붙어 간신이 되어야 했다. "저도 전하의 시녀니까 전하만을 따르겠어요." "난 가진 게 별로 없어. 그리고 넌 내 것이 아니야." 살기 위해, 가족을 구하기 위해 인간 불신에 빠진 저 폭군의 눈에 들어야 해.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어. 그런데 끔찍한 저 괴물이 점점 달라지기 시작한다. "난 내 손에 쥔 것은 아껴. 그러니까 내 허락없이 네 몸에 상처 내지 마." |
리뷰 ※스포 주의※
순정만화 그림체와 그러지 못한 내용.
주인공의 무지
주인공 라리에트의 무지함은 작품 내내 강조된다. 무지하다는 게 멍청하다 이런 게 아니라 정말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말이다. 라리에트는 모든 걸 알고 회귀해서 그 정보들을 착실히 써먹는 일반적인 회귀물의 주인공과는 다르게, 정말 아는 정보가 없다. 그녀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녀의 가문인 벨루아 백작가가 폭군 루페르트에 의해 멸문당하며, 루페르트가 회귀한 시점에는 여장을 하며 황녀 라페르트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사실 외에 라리에트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라리에트는 백작과 백작 부인의 보호 아래 아무것도 모른 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기 때문이다. 회귀 후 점차 진실에 다가가는 라리에트가 부모님께 진실을 알려달라 해도 백작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정보에서 철저하게 격리된 라리에트의 모습은 여타 로판의 주인공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이는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독자들 역시 라리에트와 같은 정보량으로 시작한다. 독자들도 이야기의 초반,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배경 지식도 없고, 그저 라리에트가 벨루아 백작가를 살리기 위해 현재 황녀로 지내는 폭군의 시녀를 자처했다는 속사정 밖에 모른다. 라리에트의 진실과 가문이 숨기고 있던 것은 이야기의 후반부에 겨우 등장한다. 그리고 초반엔 저런 애가 뭔 남주냐며 욕하던 독자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제발 둘이 행복하게 해 달라며 빌게 된다.
라리에트는 끊임없이 그녀의 무지함을 반성한다.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회귀 직후에는 미래에 일어나게 될 모든 일의 원흉을 루페르트라고 생각한다. 살아남기 위해 시녀를 자처한 사람 치고는 진심으로 라페르트를 죽이는 상상을 자주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순정만화 그림체에 어울리지 않는 섬뜩한 묘사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접근을 한 여주가 남주와 쉽게 사랑에 빠지는 흔한 클리셰와는 달리, 초반의 라리에트는 진심으로 라페르트를, 그러니까 루페르트를 증오한다.


클리셰가 아닌 진심으로 가족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라페르트와 지내면서, 라리에트는 아무것도 몰랐던 상태에서 하나씩 퍼즐 조각을 맞추게 된다. 작품 초반 라리에트는 내내 루페르트를 '괴물'이라고 불렀다. 아무 죄 없는 가족들에게 반역죄를 비롯한 온갖 죄목을 붙여서 결국 모두 사형시키지 않았는가. 라리에트의 입장에서 루페르트는 폭군, 그뿐이었다. 가족들과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면서 무사히 살아남는 게 라리에트의 회귀 후 최종 목표이다. 그래서 시답잖은 사교계 활동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다른 황족들에게 잘 보여서 인맥을 쌓는 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라페르트의 마음에 들 생각만 한다. 어차피 왕위에 오를 사람은 라페르트 밖에 없다. 다른 황족들에게 잘 보여봤자 나중에 죽으면 죽었지 인맥 따위는 사치라는 것이다. 라리에트에게 루페르트는 그런 사람이기에, 라페르트를 잘 대하다가도 두려워하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그러나 라리에트는 라페르트와 함께 지내면서 깊은 속사정까지 알게 된다. 우선 곁에서 본 라페르트는 그렇게까지 '괴물'은 아니라는 것. 회귀한 라리에트도 고작 12살이었지만, 라페르트 역시 고작 13살이다. 어린 애가 하는 협박이 무서워봤자 얼마나 무섭겠는가. 초반의 라리에트는 라페르트에게 폭군 루페르트의 모습을 겹쳐 보면서 상당히 두려워했지만, 점차 가까워지면서 라페르트의 협박성 발언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옆에서 본 라페르트는 그저 13살 힘없는, 제국에서 금지된 연금술을 곧잘 하는, 황녀일 뿐이다.
라페르트도 점점 라리에트에게 마음을 연다. 라페르트와 늘 함께 했던 시녀 토리는 인간이 아니었기에, 인간이자 귀족 영애인 라리에트만 할 수 있는 잔심부름 등을 맡기며 믿음을 쌓아가게 된다. 그러던 중 라리에트가 납치를 당하게 되는데, 무리하면서까지 구하러 온 라페르트는 라리에트에게 확실히 마음을 열었음을 보여준다.
잔심부름이자 정보 수집을 하는 라리에트는 종종 라페르트의 연금술을 통해 시야를 공유했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잔심부름을 하던 라리에트는, 라페르트의 가정사를 알게 된다. 아버지와 만나면서 왜 이전 생에 그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물어보고 현재 황가는 어떤 상황인지 '외부인'의 관점에서 듣게 되는데, 이때 라페르트는 황제의 부름을 받고 이미 죽은 어머니의 시체를 연금술로 고치고 있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간단한 술법도 컨트롤하지 못한 라페르트는 얼떨결에 라리에트에게 본인의 시야를 공유하게 된다. 라페르트와 황후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어떻게 라페르트가 루페르트로 황위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서로를 사랑할 수 없는 연민과 동정으로 이어진 어머니와 자식. 라페르트는 어머니의 죽음을 눈 앞에서 본 후에야 뭔가 잘못된 관계였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나 배운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타국에서 온 첩자인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라고는 어머니의 간통으로 태어난 자신이 황제가 되는 길 밖에 없어서 루페르트는 황위에 오를 결심을 하게 된다. 형을 밀어내고 황위에 오른 지금의 황제는 아이를 만들 수 없는 몸이다. 자신의 핏줄이 그 누구에게도 없다면, 그 누가 가져가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죽어도 죽은 게 아닌 제 어머니의 시체를 붙잡고, 루페르트는 황태자가 된다.
루페르트의 사정을 알게 된 라리에트는 더이상 그를 완전한 가해자로 볼 수 없었다. 이제껏 완전한 가해자로만 생각했는데, 그래서 살기 위해 시녀가 된 건데, 그도 결국 피해자였다. 심지어 자신이 그렇게 존경하던 완전무결한 아버지는 대략적인 진실을 알고 계셨다. 황제가 어떻게 황위에 올랐고, 황후는 어떻게 제국으로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현재 황족들 중 황제의 핏줄은 없다는 것도. 라리에트는 모든 걸 봐버렸기에 외면할 수 없었다. 루페르트의 곁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아무리 벨루아를 멸문시킨 폭군이 된다 해도 이제는 루페르트가 중요해졌다. 가족과 저의 원수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실은 피해자고, 아버지는 그걸 방관했다. 라리에트는 루페르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한때 죽이는 상상까지 했을 정도로 증오스러웠는데,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라리에트는 아버지를 뿌리치고 루페르트에게 간다.
개인적으로 폐또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이다. 본격적으로 피폐해지는 시점이기도 하고, 루페르트와 라리에트 각각의 상황 묘사가 너무 처절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지만 어머니의 꿈을 이루어줄 수밖에 없는 루페르트와 마냥 루페르트를 증오할 수 없게 된 라리에트. 이후 이야기는 본격적인 피폐물이 된다.
핏줄의 의미
핏줄타령 안 하는 로판은 없지만, 폐또죽은 핏줄로 인한 비극이 유난히 많은 편이다. 바로 직전에 언급했듯이 황후는 자신의 아들을 연민했지만 복수의 도구로 썼다. 황제의 핏줄이 아닌 자식을 황위에 올리는 것. 그게 황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였다. 애초에 황제는 아이를 만들지 못하는 몸이니, 황족들 중 황제의 핏줄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그 핏줄 때문에 루페르트는 황후의 복수를 외면하지 못했고, 황제의 학대를 참으면서 황태자가 된 것이다.
라리에트 역시 핏줄의 희생자이다. 외향적 특징이 뚜렷한 발루아에서 유난히 라리에트 혼자 그림체가 다르다. 작화적인 차이에 대한 말이 아니라 고모의 발언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사실 황제가 몰아냈던 형, 아칸 1세의 막내딸이다. 루페르트는 황제의 피가 아예 섞이지 않았으니 뭐, 남남이기는 하다. 이전 생에서 벨루아 백작가의 주요 죄목 중 하나였던 반역죄가 음모가 아니라는 것이다. 벨루아 백작가는 아칸 1세의 막내딸을 벨루아의 장녀로 키우며 반역을 도모하고 있었다. 현 황제로 인해 제국이 이미 썩을 대로 썩었으니, 상대적으로 성군이었던 아칸 1세의 핏줄을 다시 황제로 추대하겠다는 것이다. 라리에트는 이 사실을 알고 자살을 하려 했다. 자신이 다시 돌아오면서까지 지키려고 한 게 벨루아인데, 정말 역모를 도모하고 있었다면 말이 달라진다. 그 시점의 라리에트에게는 루페르트도 소중한 사람이었지만 벨루아를 지키는 게 우선이었다. 자신만 죽으면 벨루아가 역모를 꾸밀 일도, 루페르트가 벨루아를 멸문시킬 일도 없다고 생각해 죽으려고 한다. 다행히 루페르트에 의해 살게 되었지만, 둘 중 하나가 죽어야지만 끝나는 비극이기에 라리에트는 루페르트를 모질게 밀어낸다.


라리에트는 벨루아를 포기할 수 없다. 루페르트가 모든걸 미리 알았고, 만약 역모가 진짜 일어난다면 벨루아 백작만 처단할 생각이었음에도, 라리에트는 벨루아를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 회귀까지 해가면서 지키려고 했던 벨루아다. 절절하게 붙잡는 루페르트를 밀어낼 수밖에 없다. 자신이 계속 곁에 있으면 벨루아 백작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테니, 둘 중 한 명이 죽기 전에는 절대 이 악연이 끝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위의 대사 그대로 죄책감에 죽을 거 같았던 라리에트는 결국 루페르트의 곁을 떠난다. 벨루아로 가지도 않는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난다.
루페르트는 그런 라리에트를 끝까지 붙잡는다. 처음으로 마음을 준 사람이다. 라리에트가 곁에 없는 날은 이제 상상도 못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밀어내는 라리에트의 뒤로 황제와 황후를 보았다. 황후를 어떻게든 소유하려는 황제. 인형처럼 황제의 곁에 있던 황후를 떠올린 루페르트는 결국 라리에트를 놓아준다.
루페르트는 제 사랑을 부정하면서까지 라리에트를 곁에 두려고 했다. 라리에트는 그런 루페르트에게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이 그렇게 지키려고 했고, 바꾸려고 했지만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자신의 존재 자체가 원인이 되었다.
다행히 둘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살던 라리에트를 루페르트는 결국 찾아내고, 모습까지 숨겨가며 라리에트를 보러 간다. 라리에트도 루페르트의 진심을 다시 한번 느끼고, 본인도 루페르트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루페르트는 성군이 되라던 라리에트의 바람대로 성군이 된다. 자신을 무시했던 귀족들에게 아량을 베풀었고, 반역 세력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다시 궁으로 돌아온 라리에트는 벨루아 백작을 만나게 된다. 더는 제 핏줄을 이용하지 말라는 라리에트의 반발을 백작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더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벨루아 백작 부인과 그 아들은 이미 라리에트의 의견을 존중해서 백작의 편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드디어 모든 게 끝날 수 있었고, 둘은 행복하게 살았다.
벨루아 백작이 그렇게까지 지키려고 했고,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핏줄은 되려 라리에트의 반발심을 불러왔다. 지겹도록 들은 그놈의 핏줄. 그토록 소중했던 제국의 핏줄을, 백작은 제 손으로 놓치게 되었다.
P. S. 폐또죽을 피폐하게 만드는 데는 루페르트의 가정사, 라리에트와 루페르트의 감정선과 더불어 토리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리뷰가 너무 길어지고 쓰는 내 정신도 너무 피폐해지므로 이에 대한 내용은 추후 <분석>에서 더 다룰 예정이다.
총점: ★ ★ ★ ★ ☆
세심한 감정선과 서로를 향한 극단의 상황이 완성한 피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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