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정보
- 원작: '사랑받는 막내는 처음이라' - 미래나비
- 작화: 와와치
- 각색: 나정
- 출판사: 다온크리에이티브
- 회차: (25.10.27 기준) 본편 75화 휴재 중
- 연재처: 카카오웹툰, 카카오페이지
- 유형: 환생
줄거리
| 세계의 멸망을 막을 유일한 희망으로서 모두에게 희생을 강요받는 삶만 99번째. 제발 이번이 끌이길 바랐는데...! "아가씨가 태어나셨어요!" 기어코 100번째 삶을 시작하고 말았다. 어차피 또 영웅 취급하며 희생시키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무사히 태어나줘서 고맙구나" "언니가 다 구해주께!" "우리 막내 웃는 얼굴 나한테도 보여주면 안 될까?" "아기야, 나 보고 싶었어?" 이번 생은 조금... 이상하다? |
리뷰 ※스포 주의※완결된 원작 웹소설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육아물의 교과서.
100번의 삶
'사랑막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육아물이라는 장르를 빼놓을 수 없다. 육아물의 시대, 가족물의 전성기에서 육아물의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이다. 육아물의 인기가 이 작품에서 시작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완벽한 스토리라인과 클리셰의 조화로 개인적으로 육아물의 교과서라고 생각한다.
육아물의 흔한 전개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전생의 상처로 가족들을 더 이상 믿지 못하는 주인공, 그러나 사랑이 가득한 가족 덕에 주인공의 상처는 치료되고 점차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 거기에 따라오는 소꿉친구 로맨스와 먼치킨 주인공에 지지 않는 먼치킨 가족, 주인공 가족을 시기질투하는 무리들이 있지만 시원하게 선사하는 사이다까지. 이제는 정석으로 자리 잡은 육아물의 전개이다. 이전에 리뷰했던 '다한빛' 역시 이러한 전개들을 따라간다. 그러면 '다한빛'과 '사랑막내'는 유사한 작품인가? 유사한 점이 없진 않지만, 분명한 건 이 질문에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가족/육아물 속에서 두 작품은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다한빛'에서는 정령과 아이샤의 선함, 전 가족들과 현재 가족들의 충돌 등이 그 요소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막내'는 어떤 요소로 완성되는 것일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주인공 아나스타샤의 100번의 환생이다. 거듭된 회귀와 환생을 하는 주인공은 많지만, 100번의 환생은 확실히 주목할만한 요소이다. 대체 어떤 이유로 아나스타샤는 100번의 삶을 살게 된 것이고, 왜 이만한 환생이 필요한 설정일까.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는 그저 수많은 육아물과 회빙환 속 억지로 차이점을 만들어내기 위한 설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러한 사례들도 많았으니까. 과한 클리셰를 피하기 위해 과한 설정을 집어넣었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된 작품들의 사례를 우리는 너무 많이 마주쳐왔다. 로판의 전성기라면 전성기이지만, 독자들이 피곤함을 느끼게 되는 원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100번의 환생이 결코 억지 설정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아나스타샤는 98번의 삶 속에서 항상 희생을 강요받아왔다. 첫번째 삶은 본인이 자처해서 희생한 것이니 그 첫 번째 삶만을 제외하고, 항상 희생이 되는 존재였다. 100번째 삶에서 아나스타샤는 모든 삶과 마찬가지로 20살이 되지 못한 채 죽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가득 받게 되어서 이전 생들의 상처는 많이 치유되었지만, 20살을 맞이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시점에서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 20살로 넘어간 밤을 직접 체감하기 전까지.
아나스타샤는 이전 생들의 능력치와 물건들을 모두 소환할 수 있다. 환생할수록 그 힘이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녀의 방대한 힘을 느낀 가족들, 혹은 주변인들은 늘 그녀에게 희생을 요구했다. 아나스타샤의 세계들은 항상 멸망을 맞이했으니까. 98번의 멸망 속 (첫 번째 삶은 제외한다. 자의로 희생한 것이니 멸망할 것도 없었다.)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나스타샤뿐이었고, 그럴 힘을 가진 것도 오직 아나스타샤뿐이었으니.
인간 불신이 쌓일대로 쌓인 아나스타샤가 극초반에 가족들의 사랑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 건 필연적이었다. 그 수많은 삶 속에서 제대로 된 가족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처음에는 가족이니까 아껴주는 듯하다가도 그녀의 힘을 보고 두려워하는 가족, 처음부터 방치와 학대 속으로 밀어 넣은 가족, 제대로 된 사랑은커녕 관심조차 주지 않던 가족, 자식을 그저 트로피로만 생각한 가족 등 그 많은 생 동안 가족의 사랑이라곤 느껴본 적이 없던 것이다.
아나스타샤의 삶은 모두 외롭고 고독했을 거라 추측할 수 있다. 초반의 아나스타샤 역시 항상 외롭고 고독했던 삶들이라고 회상했고, 독자 역시 아나스타샤를 연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99번의 환생에 담긴 의미가 하나 둘 드러났을 때, 독자는 물론 아나스타샤 역시 마냥 외롭기만 했던 삶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100번의 삶과 더불어 이야기의 큰 중심이 되는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그리움'이다. 지난 삶의 아나스타샤를 그리워 한 인물들은 모두 환생을 해서 이번 생의 아나스타샤 곁에 머무른다. 그 인연들을 모두 찾아내고 그리움을 해소하는 것이 이야기의 큰 목표 중 하나이다. 이렇게만 얘기한다면 대체 그리움이 어떤 형식으로 남게 되는 건지 감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아나스타샤의 가족들로 예시를 들어보자.
아나스타샤의 언니 라우렌시아는 25번째 삶의 인연이다. 라우렌시아는 아나스타샤가 호위 기사로 살았을 때 지켜주었던 왕국의 공주였다. 아나스타샤는 최선을 다해 공주를 지켜주었다. 그리고 멸망의 순간이 다가오자 어김없이 희생하게 되었고. 공주였던 라우렌시아는 '지켜주고 싶어'라는 그리움을 남기게 된다. 25번째 삶에서는 아나스타샤가 항상 라우렌시아를 지켜줬으니까. 당연히 결말 직전까지는 이전 생의 기억이 없지만, 라우렌시아는 아나스타샤가 태어났던 순간부터 자신의 하나뿐인 동생을 지켜주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유년기 이후 라우렌시아는 기사 훈련을 받게 되었고, 훌륭한 기사로 성장하여 아나스타샤를 지켜주게 된다.
아나스타샤의 오빠 다미안은 45번째 삶의 인연이다. 둘은 쌍둥이였고 병약했던 당시의 다미안과 달리 아나스타샤는 가문의 후계자로 차이가 벌어지게 된다. 가문의 차별로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서로를 아끼긴 했는지 아나스타샤는 늘 오빠의 건강을 바랐다. 다미안 역시 아나스타샤가 먼저 죽게 되자 죄책감을 느꼈고. 다미안의 그리움은 '혼자 책임지게 하기 싫어'였다.
아나스타샤의 엄마 테클라는 유일하게 아나스타샤와의 인연을 기억하는 인물이다. 100번째 삶 이전 한 번의 인연으로 끝났던 다른 인물들과 달리 아나스타샤와는 두 번의 인연, 그리고 이번 생까지 포함해서 총 세 번의 인연이 있던 것이다. 아나스타샤의 35번째 삶에서는 무협지 속 천마로 아나스타샤의 스승이었고, 80번째 삶에서는 황녀로 아나스타샤의 언니였다. 항상 아나스타샤가 먼저 죽었던 다른 인연들과는 달리 천마의 삶에서 그녀는 아나스타샤보다 먼저 죽었다. 아나스타샤를 목숨보다도 더 아끼게 되었던 천마는 80번째 삶에서 아나스타샤의 언니로 환생했다. 당시에는 천마로서의 기억이 없었지만, 100번째 삶에서 그녀는 아나스타샤가 태어난 순간 그때의 그 아이였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녀의 그리움은 '못다 한 이야기가 있어.' 이번 생에서는 엄마로 못 다했던 사랑을 그녀에게 마음껏 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무려 3번의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는 건 특히 주목할 부분이다.
유일하게 아나스타샤의 아빠인 로가토만이 전생의 인연이 아니다. 이번 생을 제외하고는 무려 두 번의 인연이 있던 테클라와 대조되는 부분이지만, 테클라가 생을 건너는 어머니의 사랑을 보여주었다면 로가토는 전생의 인연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니까, 딸이니까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여러 인연들이 등장한다. 아나스타샤가 23번째 삶에서 돌봐주었던 길고양이가 환생한 호랑이, 마왕으로 살던 13번째 삶의 공주와 용사가 환생한 공작저의 기사 두 명 등. 여러 그리움을 통해 아나스타샤는 99번의 삶들이 마냥 외롭고 고독하지만은 않았던 걸 깨닫게 된다. 항상 그녀를 그리워하는 존재들이 있었으며, 그 염원이 모여 100번째 삶에서 모두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삶은 그녀를 그리워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세계이다.


결코 의미 없는 100번이 아니었다. 외롭고 고독하다 생각했던 삶 속에서도 그녀의 곁에는 항상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 그리움으로 아나스타샤는 100번째 삶을 살게 되었다. 100번째 세계는 그리움이 모여서 만들어진, 아나스타샤에게 선물과도 같은 삶이 아니었을까?
2천년의 사랑과 집착
그렇다면 남자주인공 미하일과는 어떤 인연이 있었던 걸까. 이번 삶에서 아나스타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인연이 있었다, 아버지를 제외하고. 아나스타샤는 능력을 써서 그리움의 대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이번 생이 첫 인연이라고 확실하게 정의된 아버지와 달리 미하일과의 인연은 볼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지우려고 하는 듯한 흔적과 함께.
아나스타샤의 또 다른 소꿉친구이자 시동으로 만났던, 옆나라 악시온 제국의 무시받는 17 황자 라미에르의 정체는 꽤 빠르게 밝혀졌다. 바로 아나스타샤의 환생과 더불어 미하일과의 인연에 장난질을 한 절대자 라미엘의 영혼의 조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라미에르는 아무 죄가 없고, 도리어 라미엘에게 맞서서 영혼의 주도권을 가져오려 했지만 라미엘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흑막 그 자체이기 때문에 라미엘과 라미에르는 구별하여 명시하겠다.
미하일의 정체는 최초의 삶에서 아나스타샤의 연인이었다. 이후 그는 아나스타샤의 99번의 삶 중에서 무려 10번이나 같은 세계에서 살았지만 아나스타샤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당연히 이는 흑막의 방해였고.
아나스타샤조차 기억하지 못했던, 첫번째 삶 이전의 최초의 삶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미하일은 그 삶에서 암살자 미카엘로, 아나스타샤는 성황제 아나스타시스로, 라미엘은 우노 추기경으로 인연이 있었다. 최초의 삶에서 자신의 뒤를 이을 새로운 절대자로 아나스타시스를 점찍었던 라미엘은 우노 추기경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저 충실한 추기경인줄만 알았던 라미엘은 아나스타시스를 독점하려 했고, 아나스타시스가 결국 자신이 아닌 이 세계를 선택하자 그녀에게 100번의 환생이라는 운명을 선사했다. 아나스타시스가 단 한 번이라도 세계가 아닌 라미엘을 선택하길 바라면서. 그러나 아나스타시스는 아나스타샤가 될 때까지도 세계를 선택했다.
그리고 99번의 삶 중 그리움의 대상이 존재했던 생에는 모두 미카엘, 즉 미하일이 있었다. 첫 번째 생에서의 과외 선생님을 시작으로 23번째 삶에서는 죽은 아나스타샤를 대신해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었고, 테클라를 처음 만났던 35번째 삶에서는 부모가 없던 갓난아기인 아나스타샤를 테클라에게 데려다 주었다. 아나스타샤의 능력이 미하일의 그리움을 감지하지 못했던 건, 물론 라미엘의 방해도 있었지만, 그의 그리움이 무려 10번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삶에서 라미엘에 의해 영혼이 조각난 미카엘은 10번이나 아나스타샤와 같은 생을 살았지만, 라미엘의 방해로 아나스타샤는 결말 직전까지 이전 생에서의 그를 눈치 채지 못한다. 테클라가 천마의 삶 이후 아나스타샤의 언니로, 또 엄마로 다시 환생할 수 있던 것도 미카엘이 12번의 기회 중 두 번을 그녀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2천년의 시간 동안 미하일은 오직 아나스타샤만을 사랑했다. 비록 완전히 곁에 머무를 순 없었지만, 그 사랑이 2천 년을 돌아왔지만 끝까지 아나스타샤만을 사랑하고 그녀만을 위한다. 그녀의 5번째가 되어도 좋으니 (엄마, 아빠, 오빠, 언니 다음) 아나스타샤의 행복만을 바란다.
미하일의 사랑에 대비되는 라미엘의 집착은 소름돋을 정도이다. 미카엘의 영혼을 조각낸 장본인이자 아나스타샤가 그리움을 해소하려고 할 때마다 사사건건 방해를 한다. 결말에는 결국 또다시 멸망을 불러일으켜서 아나스타샤가 사랑한 이 세계를 박살 내려고 한다. 그러나 아나스타샤는 그의 집착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다. 최초의 삶 속 미카엘의 사랑을 기억해 낸 아나스타샤는 라미엘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감정을 납득할 수 없다. 모든 걸 없애면서 그녀를 가지려고 한 건 결코 사랑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착 남주는 분명 매력적인 소재이다. 오직 여주만을 바라보며 사랑을 갈구하는 다소 정상적이지 않은 사랑은 로판에 특화되었다. 사람들이 매체에서 끊임없이 영원한 사랑을 말하는 것은 아마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아서, 영원한 사랑은 픽션에서 존재하는 낭만적이면서 비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집착 남주는 이와 비슷한 결에서 파생된 것이라 생각한다. 영원한 사랑을 보여주기에 딱 적합한,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맹목적인 사랑을 보여주지 않는가? 집착과 한 세트처럼 쫓아오는 소유욕도 마찬가지이고.
'사랑막내'의 남주 미하일도 집착과 소유욕을 드러낸다. 다미안과 라우렌시아를 부러워하고, 라미에르를 경계하고, 외전에서는 아나스타샤에게 오는 모든 연애 서신을 사전에 처리한다. 그러나 미하일의 사랑은 집착과 소유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소유욕 이전에 아나스타샤의 행복이 있다. 그는 아나스타샤의 행복을 우선시한다. 과하면서 귀여웠던 어린 시절의 구애 조차도 아나스타샤가 진심으로 싫다고 했다면 멈췄을 것이다.
집착 남주의 매력은 집착과 소유욕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여주를 사랑해서 그녀의 행복을 최우선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마찬가지로 집착을 보여주는 라미엘의 등장으로 이 사랑의 차이점을, 그리고 라미엘이 남주가 될 수 없고 결국 라미에르에게 밀리게 된 이유를 보여준다.
라미엘에게 아나스타샤의 행복은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세상을 선택할 때마다 환생을 하게 만든 것은 라미엘이다. 단지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일한 이해자라는 말로 끊임없이 아나스타샤를 묶어두려고 한다. 환생을 벗어날 방법을 제시해 준 건 라미엘이었지만, 아나스타샤가 진정한 그리움들을 해소하려고 할 때마다 끊임없이 방해하고 위협한다, 그녀가 그리움을 해소하는 것이 싫다는 듯이. 이 방법 전에는 아나스타샤가 오직 자신에게만 의지할 수 있도록 가족과의 사이도 갈라놓으려고 한다.
과연 이 행동들이 아나스타샤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미엘은 미하일과 비슷한, 어쩌면 더 한 집착과 소유욕을 보이지만 딱 그 뿐이다. 그가 말하는 사랑 속에서 아나스타샤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미엘의 조각인 라미에르를 보면 그 차이가 두드러진다. 라미에르 역시 아나스타샤를 사랑한다. 아나스타샤도 그를 소중한 친구로 생각하고. 라미에르는 라미엘의 조각이지만 아나스타샤를 대하는 모습에서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라미에르는 아나스타샤와 미하일이 잘 되어도 그들 사이를 방해하지 않는다. 아나스타샤가 그와 있을 때 진정으로 행복한 것을 아니까. 굳이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그녀의 옆자리를 욕심내지 않은 건 아니었겠지만. 완전히 라미엘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마지막에는 결국 라미엘의 소멸에 한몫했다는 걸 생각하면 여기도 아나스타샤의 행복에 퍽 진심이라는 것이다. 이런 라미에르의 행보는 라미엘이 잘못된 사랑을 했다고 못을 박아버린다.
총평: ★ ★ ★ ☆ ☆
교과서적인 육아물이지만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매력적인 설정들로 완성되는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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