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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석

[로판분석 #01] 선과 악 - '공포게임 메이드로 살아남기'

by 칰이 2025. 10. 18.

https://chikiii-poki.tistory.com/12

 

[로판리뷰 #10] 공포게임 메이드로 살아남기

기본 정보- 원작: '공포게임 메이드로 살아남기' - 김욤뇸- 작화: 신시어- 각색: 서치, KD- 출판사: 디씨씨이엔티- 회차: (25.10.13 기준) 본편 87화 연재 중- 연재처: 카카오웹툰, 카카오페이지- 유형:

chikiii-poki.tistory.com

 

 '공메살'에는 다양한 선인(善人)과 악인()이 등장한다. 신이 만든 서버 속 NPC에 불과한 그들은 다른 작품에 비해 그 차이점이 명확한 편이다. 간단한 예시를 한번 보자. 힐다의 친구 에밀리는 분명한 선인이다. 그리고 아드리안의 아버지인 팔츠그라프 백작은 악인이다. 그러나 독자는 작품을 읽으면서, 결말에 도달하기 전까지 끊임없는 의문에 휩싸인다. 힐다의 적대 대상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경찰인 해리슨 경감은 과연 선인인가? 그렇다면 게임의 최종 보스로 알려진 아드리안은 완전한 악의 편인가? 이 글은 그 경계의 불명확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악역의 역할

 

 아드리안은 게임의 최종 보스로 설정되었다. 애초에 그는 악마이다. 악마의 선행은 오히려 모순되지 않는가?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는 저주 때문에 끊임없이 살인을 저질러야 하는 입장이다. 아무리 저주 때문이라지만, 살인은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다. 그러나 아드리안은 악마이기 때문에 그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 팔츠그라프 백작가의 후계자라는 명분으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본인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살인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지 죄책감이나 잘못된 행동이라는 인지에서 숨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힐다를 사랑하기 전 아드리안의 세상은 당장 죽일 사람과 나중에 죽일 사람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아드리안은 이렇게 완벽한 악역이자 게임의 최종 보스로 살게 되었다.

 완벽한 악인을 남자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개연성이 필요하다. 가장 우선시 되는 건 아무래도 역시 주인공 힐다의 사랑이다. 힐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리뷰에서 다뤘으므로 오늘은 그다음으로 필요한 개연성인, 독자도 이해할만한 아드리안의 서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완벽한 악역으로 보인 아드리안, 그러니까 사탄의 내면에도 아직 연약한 도련님인 아드리안의 영혼이 조각으로나마 남아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백작이 살기 위해 몸부림칠 때 어머니, 즉 백작 부인을 들먹이자 잠깐이나마 망설이던 모습이라든가, 백작을 죽이고 난 후 얼굴에 비친 슬픔이라든가, 어머니가 찾아온다고 했을 때 진심으로 기대하던 모습이라든가. 힐다도 이 점을 알아차려서 백작 부인과 아드리안의 사이 개선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연약한 본성과 더불어 그의 운명에 대한 연민은 서사의 개연성으로 충분했다. 사람을 죽여야지만 죽을 듯한 이 고통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는 운명. 당연하겠지만 그도 원한 것은 아니다. 그를 갖지 못한 악마 릴리트가 목숨을 바쳐 완성한 저주는 그를 약하디 약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고,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옆에서 보던 힐다조차도 이렇게 고통받는 건 원하지 않았다고 독백한다. 당시의 힐다는 아드리안을 두려워하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최종 보스에게 연민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힐다와 아드리안이 사랑에 빠지고, 힐다는 아드리안을 위해 살인을 도와주지만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운다. 사람으로서 아무런 죄가 없는 자는 차마 해칠 수 없던 힐다는 온갖 범죄자들의 신상을 조사해서 그 자들만 죽이기로 아드리안과 합의를 본 것이다.

 힐다가 범죄자를 찾아내는 방식도 정말 '공메살'다웠다. 악의를 눈으로 볼 수 있고,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세계의 특성상 힐다에게 '악의'를 느끼고 친근하게 다가온 범죄자들 덕에 힐다는 쉽게 '도시락'을 모을 수 있었다. 이 악의는 힐다도 모르는 사이, 아드리안을 도와주면서 쌓이게 된 것이다. 주인공에게 대놓고 악의를 부여해 주는 건 역시 흔하지 않은 설정이다. 아무리 주인공이라지만,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합리화된 행동들이라지만 사전적 정의에서 보면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이라며 마치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아이러니한 점은, 시스템이 계속해서 힐다에게 살인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악역으로서 위치가 애매해진 아드리안 대신, 세계는 곧 새로운 악인을 제시한다. 투철한 사명감을 지닌 해리슨 경감이다. 이야기 초반의 해리슨 경감은 그냥 좀 재수 없고 싸가지 없는 경찰에 불과했다. 최종 보스를 도와주게 되었다는 힐다의 죄책감을 꼬집기라도 하는 양 힐다를 몰아붙이기도 하고, 범죄자를 잡기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그냥 좀 거슬리는, 그렇지만 정의감 넘치는 경찰 정도였다. 표면적으로는 악의 편에 서게 된 힐다와 대척점에 있는 듯 그는 곧 '적대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해리슨 경감의 잘못된 정의감은 이야기 중반부터 드러나게 된다. 

 악마 숭배자들에게 잡혀간 친구 에밀리를 구하기 위해 힐다는 스스로 악마 숭배자들의 소굴인 신전으로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악마 숭배자들에 대해 조사하다 잡혀 들어온 해리슨과 마주치게 되었고, 목표는 다르지만 목적지는 같았기에 둘은 함께 신전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게 된다. 해리슨의 성격 상 당연히 몰래 들어간 것은 아니고(...) 교주를 만나게 해 달라며 무작정 난동을 부려서 (...) 가게 된 곳이 바로 제단이 있는 본거지였다. 

 다행히 힐다는 그곳에서 에밀리를 만나게 되었지만, 이어지는 해리슨의 행동으로 그는 새로운 악역으로 떠오른다. 악마 숭배자들의 교주는 역시 팔츠그라프 백작이었고, 그는 사탄을 불러내기 위해 아내를 제물로 바치고 죄 없는 사람들의 수많은 목숨을 빼앗는 등 영락없는 악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해리슨 경감 역시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팔츠그라프 가문을 의심했고, 그 진상을 목격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당장은 사는 게 더 급했던 해리슨은 백작에게 동맹을 제안한다. 지금 자신을 이곳에서 탈출시켜 주면 앞으로 어떤 의심이 팔츠그라프 가문을 향해도 막아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백작은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물론 그 제안은 거짓이었지만 해리슨은 당장의 탈출이 더 급했다.

 무사히 탈출하게 된 해리슨은 본인이 끌어들인 힐다를 배신하게 된다. 백작 가문의 하녀니까 백작이 알아서 하라며, 힐다의 손목을 묶고 있던 밧줄이 느슨한 것과 간수들의 교대 시간을 알고 있다는 점까지 알려주면서. 혼자 남게 된 힐다는 아드리안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에밀리와 함께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이전까지 독자는 해리슨의 위치에 대해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아무리 싸가지 없고 힐다의 적대 대상이라지만, 어쨌든 정의감이 투철한 경찰 아닌가? 위협이 되는 대상이지만 완전한 악역은 아니지 않을까? 힐다와 아드리안의 살인이 끝끝내 발각되지 않으면, 조금 껄끄럽긴 해도 어찌어찌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에피소드를 기점으로 이러한 평가들은 완전히 뒤집혔다. 그는 본인의 안위만 중요한 사람으로, 정의를 쫓지만 정작 본인의 정의감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가차 없는 위선적인 인물이었다. 악역으로서의 위치가 애매해진 아드리안과 곧 퇴장할 악역인 백작의 뒤를 이은 새로운 형태의 악역이다. 

 

 이윽고 해리슨의 또 다른 면모가 밝혀진다. 범죄자만 골라서 죽인 마을의 연쇄살인범의 정체가 바로 해리슨이었다. 너무나도 정의감이 넘쳤던 나머지, 신분제로 인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해리슨은 큰 상실감을 느꼈다. 그 상실감은 곧 범죄로 이어졌고, 사람을 죽일수록 그는 점점 살인에 무뎌지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면 용의자로 보였고, 용의자는 곧 예비 범죄자로 보였다. 예비 범죄자를 죽여야 범죄의 싹을 뽑지 않나,라는 생각까지 이어지고 이는 곧 잘못된 신념과 삐뚤어진 사명감으로 이어졌다. 해리슨의 과한 정의감은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이었다.

 

 '공메살' 속 대표적인 세 악역은 모두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완벽한 악역으로 보였지만 실은 그 역시도 피해자에 불과했던 아드리안, 제 사리사욕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는 진정한 악역 팔츠그라프 백작, 그리고 영웅인 줄 알았지만 본인이 영웅이라는 자기만족에 취해 비뚤어진 사명감을 갖게 되어서 결국 최종적으로 악역이 된 해리슨 경감. 아드리안의 서사가 가장 촘촘하고 나머지 두 악역의 서사는 별 볼 일 없는 것도, 물론 주연과 조역의 차이도 있지만, 최종적으로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결과론적 이유일 것이다. 아드리안은 악마이지만 주인공이 될 수 있었고, 세상에는 악마보다 더 한 놈들이 많다는 것. 이 작품이 단적으로 보여주는 두 악역은 여러 형태의 악역 서사를 보여줌과 동시에, 악마의 존재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만든다. 

 

 로판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최종 보스는 역시 악마이다. 유럽에서 악마는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고, 그 판타지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흑막의 뒤에 악마가 있다는 건 이제 하나의 클리셰로 자리 잡았을 정도이다. 그러나 '공메살'의 악마, 사탄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신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존재로 천사와 악마, 모두가 될 수 있었지만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천사는 타락해지기에 스스로 날개를 떼어내고 악마를 선택한 사탄. 그를 사랑했지만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에 결국 살인이라는 족쇄를 채운 악마 릴리트. 그녀의 저주는 전형적인 악마이지만, 사탄은 꽤 오래 그 저주에 고통받아서 힐다를 믿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악마가 한낱 인간을 사랑해서 두려움을 얻는다니! 릴리트가 본다면 얼마나 비웃었을까. 릴리트의 존재는 꼬리표처럼 사탄을 따라온다. 그 역시도 악마라고, 릴리트와 다를 바 없다고. 갖지 못한다면 죽여서라도 옆에 두는 게 악마라고. 사탄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스스로 만든 감옥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러나 힐다는 결과적으로 아드리안을 사랑하기에, 그를 그의 감옥에서 꺼내오는 데 성공한다. 사랑으로 저주에 걸린 악마가 사랑으로 구원받다니. 생각보다 로맨틱하다.

 

악마 vs ...

 

악마의 대척점이 천사가 아닌 것도 '공메살'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이다. 이 작품에서 악마의 대척점은 같은 악마 혹은 인간이다. 대척점으로서의 악마 릴리트는 위에서 설명했으니 대척점으로서의 인간에 대해 얘기해 보자.

 인간이 악마를 처치하는 건 흔한 전개이다. 악마는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는 존재로, 항상 주인공들의 앞길에 방해가 되었으니 말이다. 만약 악마가 주인공이라면 처리해야 되는 대상은 천사가 된다. 서로의 종족을 죽이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는 게임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인 거다. 그러나 '공메살' 속 악마 사탄의 대척점에는 오직 한 인간만이 있다. 릴리트의 저주에 나온 '천적'이다. 천적이 아드리안을 죽이거나, 아드리안이 천적을 죽이거나. 둘 중 하나가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저주의 굴레 속에서 이긴 건 아드리안이었다. 

 

 아드리안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존재였다. 악마라는 존재는 원래 그랬다. 악마 숭배자들도 다 그들의 신에 대한 증명을 바라는 마음이다. 아드리안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지만, 사탄까지도 사랑한 건 힐다뿐이다.

 해리슨도 당연히 악마 숭배자를 모두 잡아서 죽이려고 했다. 그래서 악마 숭배자들의 소굴로 들어간 것이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탈출한 후 그 신전의 모두를 싸그리 다 죽이려고 했다. 아드리안이 나타나서 그의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이렇듯 악마 숭배자는 본래 처벌받아야 되는 대상이다. 하물며 그들의 신인 악마는 어떨까?

 

 이렇게 보면 아드리안의 적은 세상 모든 인간 같지만, 그는 그렇게 험악한 존재가 아니다. 해가 되지 않는다면, 힐다에게 손을 뻗지 않는다면 굳이 먼저 건들지 않는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살인을 저질러야 하지만, 힐다가 정리해 준 범죄자, 일명 도시락 목록 덕에 무해한 사람들에게는 손을 뻗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해리슨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해리슨도 범죄자들을 죽이고, 아드리안도 죽이는데, 그러면 둘은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 아닌가?

 본질적으로 비슷한 면이 있다는 점은 동의한다. 결과적으로 범죄자를 죽이는 건 같으니까.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그들의 태도와  과정이다. 시스템의 도움 덕에 힐다는 완벽한 악인을 구별할 수 있다. 시스템이 다 띄워주니까, 분명한 범죄자를 골라낼 수 있는 것이다. 시스템 덕에 애먼 사람은 의심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시스템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해리슨은 일단 의심부터 한다. 마을 사람 전부가 용의자로 보이고, 예비 범죄자로 보인다. 예비 범죄자라면 죽여야지 범죄가 시작도 하지 않을 것 아닌가? 그에게는 시스템도 없고 악마의 힘 같은 것도 없다. 그냥 그의 직감뿐이다. 직감으로 사람을 의심하고 죽이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잘못된 신념도 가지고 있다. 필요할 때만 정의감을 발휘한다. 힐다와 에밀리, 그 외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까지 악마 숭배자들과 함께 죽이려고 한 그이다. 어차피 죽어도 상관없지 않은가? 그가 아니었다면 악마 숭배자들에 의해 죽었을 것이다. 어차피 죽을 운명, 누가 먼저 죽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해리슨의 입장에서는 부당한 상사였던 마르크 경정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그는 해리슨의 잘못된 신념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그에게 휴식을 권하기도 했다. 잠시 경찰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면 저 신념도 곧 버릴 것이라 생각하고 머리를 식히고 오라고 했지만 해리슨은 끝내 듣지 않았다. 해리슨을 존경하던 재프리 경사 역시 범죄자만 죽이는 연쇄살인범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해리슨이 외면하고 있던 진실을 콕 집는 듯한 그의 대사에서는,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을 죽이는 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해리슨은 자신의 숭고한 뜻을 재프리 조차 알아주지 못한다며 원망한다. 악마보다 더한 놈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캐릭터이다. 

재프리의 대사

 

완전한 선

 

 '공메살'에는 다양한 악역이 나오지만, 선역은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적다. 치안 따위는 개나 줘버린 이 마을의 특성상, 길거리에 널린 게 범죄자이고 악마이기 때문이다. 아들을 한없이 사랑하는 백작 부인은 아들을 믿지 못해 성수로 죽이려고 했으며, 힐다가 없었더라면 죽기 직전까지 그를 외면했을 것이다. 백작가의 난폭한 말을 다룰 수 있는 유능한 마굿간지기인 제드는 흉악한 강간범으로 그 때문에 목숨을 잃은 여자도 상당수다. 아드리안의 주치의인 휴버트는 항상 아드리안의 건강을 생각하고 아내를 위한 연구와 돈을 아끼지 않는 애처가이지만 아드리안의 건강이 사람을 죽여야지만 낫는다는 걸 깨닫고는 그의 환자들을 아드리안에게 바친다. 힐다가 처음에는 부탁을 위해 호감 대상으로 추가했지만 힐다를 신나게 비판해서 결국 적대 대상이 된 아이작은 최후반부 해리슨의 음모에 휘말려 죽을 위기에 처하는 피해자가 된다. 케이든과 그로버는 힐다에게 '도시락'을 꾸준히 제공하지만 결국 뒷골목 깡패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알고 보니' 선한 사람도 있다. 하녀장 레티샤는 힐다에게 계속해서 일을 주면서 잔소리를 하지만 그래도 힐다를 아껴서 힐다와 아드리안의 사이를 눈치챘을 때 하녀 신분의 힐다를 가장 먼저 걱정한다. 백작 부인의 하녀 올리비아는 백작 부인과 함께 아드리안을 의심해서 아드리안의 목숨을 위협했지만 진심으로 백작 부인을 생각하는 인물로, 그녀가 별장에 유폐되었을 때도 항상 그녀의 곁을 지킨다. 과거 사탄의 부하였던 웨어울프의 환생인 카지미어는 같은 고아원 출신 에이브릴과 함께 고아원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그러나 알고보니 악인/선인이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선한 사람은 작품 내에선 에밀리밖에 없다.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에서, 에밀리는 마치 완전한 선으로 보인다. 오히려 에밀리의 이런 모습으로 힐다는 이 세상이 게임이라는 걸 계속해서 자각하지만.

 

 리뷰에서도 언급했듯, 에밀리가 힐다에게 부탁받은 일을 누군가 멈춰주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수행하는 모습은 작품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또 다른 장치이자 힐다가 시스템의 위험함을 체감하는 계기가 된다. 완전한 선이 되려 위협이 된 것이다. 물론 에밀리는 착한 사람이 맞다. 힐다에게 서운함을 느껴도 곧장 풀어지고, 힐다를 항상 걱정하고, 텃세를 부리는 하녀들 사이에서 늘 힐다에게 힘이 되어준다. 힐다 역시 에밀리를 정말 친절하고 착한 친구로 생각한다. 그러나 완전한 선이 결국 작품 내에서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완전한 선은 결국 악마의 구원과 동일시될 수 없다.

 힐다가 끝까지 선만을 고집했다면 아드리안을 구원할 수 있었을까? 애초에 아드리안과 사랑에 빠진 본인을 혐오했을 것이다. 혹은 해리슨 경감에게 가담하여 아드리안을 없앴을 수도 있고. 시스템의 목적이 아드리안의 안위였다는 걸 생각하면, 시스템 자체를 거부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시스템을 거부하고 필사적으로 세계를 탈출하려 하지만 탈출 과정이 모두 아드리안을 위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히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는 거나 마찬가지다. 완전한 선을 추구하려다가 결국 악이 되어버린 해리슨에게 일찌감치 당했을 수도 있고. 뭐가 됐든 공포게임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완전한 선은 구원까지 이를 수 없다.